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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친 퍼팅이 타이틀리스트의 설립으로 이어지다.

2019-11-04

Phil Young (1910)

1930년 어느 일요일 오후, 열정적인 아마추어 골퍼이자 고무 가공 회사(아쿠쉬네트 프로세스 컴퍼니)의 소유주였던 필 영은 동네 병원의 엑스레이 부서 담당자였던 그의 친구와 골프 시합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홀의 마지막 샷에서 필 영은 퍼트의 라인을 보고, 강한 스트로크를 쳤습니다. 그러나 볼이 홀에 가까워지면서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결국 그 볼은 홀 안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모든 골퍼들이 알고 있듯이, 그것은 결코 볼을 친 사람의 잘못이 아닙니다. 항상 장비의 잘못이죠…그렇죠??

진지하게 골프볼 자체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확신한 영과 그의 친구는 병원에 가서 골프볼을 엑스레이로 촬영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중심에 있어야 하는 코어가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필 영은 골프볼의 결함을 발견하면서, 그의 MIT 동문이자 고무 전문가인 열정적인 골퍼 프레드 보머를 아쿠쉬네트 골프 담당 사업부의 책임자로 초빙합니다. 그들은 더 나은 제조 공정을 시행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좋은 골프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우리가 만들 골프볼은 모두 일관된 품질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 이것이 바로 그들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영과 보머는 최초의 타이틀리스트 골프볼을 완성하는데 수년의 노력을 들였고 1935년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골프볼은 클럽 전문가들과 골퍼들에게 ‘지금까지 만들어진 골프볼들 중 최고의 골프볼’로 소개되었습니다. 완벽한 골프볼을 완성시키기 까지 쌓은 경험과 교훈들을 적용하여, 영은 검수 프로세스를 도입해 오늘날까지 적용하고 있습니다. : 모든 타이틀리스트 Pro V1 그리고 Pro V1x 골프볼들은 X선 촬영을 통한 검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우리는 아쿠쉬네트 컴퍼니 창립자 필 영의 아들, 딕 영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딕이 우리를 위해 회상하듯이, 그의 아버지인 필 영이 불규칙한 골프볼을 통해 홀 컵을 비켜가며 좌절하는 계기가 없었더라면, 넘버원 골프볼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쓰여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아래의 전체 오디오를 들어보십시오.

아래에 자유롭게 의견을 공유하시고 아쿠쉬네트의 이야기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저희에게 알려주세요.

타이틀리스트의 역사와 유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타이틀리스트 스토리’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