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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1' 골프 볼의 탄생

201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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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1' 골프 볼의 탄생

‘난공불락.’
그 높은 벽 앞에서 좌절하는 이들은 이런 한탄을 쏟아낸다. 앞으로 이 만큼 지배력을 갖는 제품이 또 나올 수 있을까. 단언컨대, 아니다. 세상에 나온 지 80년, 대표 상품이 나온 지 15년. 그동안 수많은 도전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성(牙聲)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경쟁자들에 한발 앞선 행보로 자신의 위치를 더욱 공공하게 다지고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프 볼로 칭송받는 타이틀리스트 볼에 관한 얘기다.

main4에피소드가 신화를 창조하다
위대한 전설은 언제나 작은 에피소드에서 시작된다. 그날의 일이 골프 볼의 역사를 바꿔놓을 지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질 지도 미처 몰랐다. 

1932년 어느 날. 미국 MIT 대학(메사추세츠 공과대학) 출신의 ‘필 영’(Phil Young)은 치과의사 친구와 라운드를 하고 있었다. 실력이 뛰어났던 그는 그날따라 잘 맞은 퍼팅임에도 불구하고 볼이 홀을 자주 비켜나가자 골프 볼의 성능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다.

라운드를 마친 그는 곧장 치과의사 친구의 사무실로 가 골프 볼을 X-레이로 찍어봤다. 필름으로 나타난 볼에서는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됐다. 코어가 볼의 정중앙에 위치하지 않았다. 다른 골프 볼들도 촬영했다. 그의 예상대로 대부분 코어의 크기도 일정하지 않고, 그 위치도 제각각이었다.

앞서 필 영은 1910년대에 2명의 파트너와 고무 제조업체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지역 명을 따 인 회사인 아쿠쉬네트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그의 회사는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고무 회사로 성장했다. 이후 라텍스와 고무를 공급했고, 물병을 비롯한 자신들의 고무 제품을 생산하기도 했다.

고무 제조업체를 운영하면서 스포츠에도 남다른 관심이 있었던 필 영은 그날의 일을 계기로 골프 볼을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 MIT 동문이자 고무 전문가인 프레드 보머를 초빙해 3년간 제품 개발에 매진한 결과 1935년 드디어 첫 번째 볼이 탄생했다. 그는 브랜드 네임을 ‘타이틀 홀더’라는 의미의 타이틀리스트(Titleist)라고 했다.
신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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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적인 DNA와 뛰어난 마케팅의 결합
필 영을 비롯한 타이틀리스트 구성원들은 탐구적인 DNA(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다. 골프업계에 X-레이를 도입한 건 물론 고무 실을 코어에 일정하게 감을 수 있는 기계를 개발하고 특허를 냈다. 이 기계 덕분에 ‘데드 센터’(dead center) 볼, 즉 무게 중심이 없는 볼을 생산할 수 있었다. 무게 중심이 없다는 건 코어를 볼 중심에 정확하게 위치시켰다는 의미다.

타이틀리스트는 마케팅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1936년에는 골프 볼 시연 기계를 개발해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투어 선수들은 물론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그들 볼의 뛰어난 퍼포먼스와 품질을 알리기 시작했다.

1945년부터는 ‘최고 기량의 선수들이 믿고 선택하는 골프 볼이 세계 최고의 볼’이라는 걸 전제로 하는 POI(Pyramid Of Influence) 전략을 펼쳤다. 이 전략은 지금까지도 타이틀리스트의 마케팅을 비롯한 모든 활동의 근간이 되고 있다.

US오픈과 타이틀리스트
1949년 US오픈은 타이틀리스트에 있어서는 역사적인 해다. 메디나 골프장에서 열린 US오픈에서 가장 많은 선수들이 타이틀리스트 볼을 사용해 마침내 ‘넘버 원’ 골프 볼 자리에 올랐다. 그 기록은 지금도 이어져 66년간 US오픈에서 가장 높은 사용률을 기록하고 있고, 전 세계 주요 투어에서도 사용률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타이틀리스트가 압도적인 선택을 받는 비결은 골퍼들의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끊임없는 연구개발에 있다. 1964년에는 골프 볼의 공기역학을 연구하는 R&D 팀을 출범했고, 10년 뒤인 1974년에는 볼 스피드와 론치 각도, 스핀 양, 헤드 스피드, 스윙 궤도, 클럽의 입사각 등을 측정할 수 있도록 설계된 실내 테스트 연구소인 아쿠쉬네트 골프 센터(AGC)를 설립했다.

main3Pro V1의 출시…부동의 1위 구축 
새로운 천년의 시작은 타이틀리스트에게도 새로운 도약을 의미했다. 타이틀리스트는 2000년 골프업계 역사상 최고의 볼로 꼽히는 Pro V1을 출시하며 ‘넘버 원’ 골프 볼의 위치와 명성을 더욱 공고히 다졌다. Pro V1은 출시되자마자 투어 선수와 아마추어 골퍼에게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골프 볼이 됐다.

타이틀리스트는 Pro V1을 시장에 출시하기에 앞서 100명의 선수를 대상으로 성능을 확인하는 ‘시딩 프로세스’를 거쳤다. 드라이빙 레인지는 물론 페어웨이와 그린을 오가며 진행된 테스트에서 선수들은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내놨다.

Pro V1이 공식 데뷔한 건 2000년 10월 PGA 투어 인베시스 클래식에서다. 이 대회에서 우승자를 포함해 무려 47명의 선수가 Pro V1 볼로 과감히 교체했다. 선수들에게 있어 시즌 중간에 볼을 바꾼다는 건 굉장한 모험이었지만 그들은 Pro V1의 성능을 믿었다. 인베시스 클래식은 골프 역사상 한 번에 가장 많은 선수들이 용품을 바꾼 대회로 기록됐다.

당시 미국의 유력 일간지 USA 투데이는 Pro V1에 관해 “골프 업계를 뒤흔든 골프 볼(The ball that's turning golf upside down)”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골퍼들의 열렬한 호응에 힘입어 Pro V1은 예정보다 3개월 앞당긴 2000년 12월 시장에 출시됐다.

이후 2년마다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는 타이틀리스트는 올해 8세대의 Pro V1과 V1x를 출시했다. 더욱 업그레이드된 열경화성(서모셋) 엘라스토머 우레탄을 개발해 적용했으며 스핀 컨트롤과 부드러운 타구감, 뛰어난 내구성을 자랑한다.

기술이 상향평준화된 요즘, 잠시 업계 1위를 하는 건 가능해도 오랜 기간 부동의 1위를 차지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80년 전 최초의 제품을 출시하고, 대표 모델 하나로 15년째 난공불락의 요새를 만든 타이틀리스트. 그 비결은 끊임없는 탐구정신과 소통, 그리고 혁신을 멈추지 않는 ‘자기 파괴’에 있다.

△ 타이틀리스트 골프 볼 히스토리
1910년대 MIT 출신의 필 영이 2명의 동업자와 고무회사인 아쿠쉬네트 설립
1920년대 몰드 고무 제품 생산에 집중 
1932년 필 영이 치과의사와 라운드 도중 볼의 구조에 의문 제기, X-레이 촬영
1935년 3년의 연구 개발 끝에 최초의 타이틀리스트 골프 볼 탄생
1936년 미국 전역 순회하며 타이틀리스트 골프 볼 성능 시연
1945년 투어 프로를 중심으로 하는 POI 전략 수립
1949년 US오픈에서 가장 많은 선수들이 사용하며 ‘넘버 원’ 자리 오름
1964년 공기역학을 연구하는 R&D팀 출범
1974년 실내 테스트 연구소인 아쿠쉬네트 골프 센터(AGC) 설립
1991년 최초의 2피스 볼인 HVC 출시 
1994년 우레탄 커버를 최초 사용한 프로페셔널 생산 
2000년 역사적인 Pro V1 출시 
2002년 연간 매출액 10억 달러 돌파 
2003년 Pro V1 2세대와 함게 Pro V1x 출시
2007년 Pro V1 전 세계 투어 프로 1000번째 우승
2009년 Pro V1과 Pro V1x 전 세계 1500번째 우승 
2012년 Pro V1과 Pro V1x 전 세계 1900번째 우승 
2015년 8세대 Pro V1 출시

(사진 촬영 : 마니아 리포트 / 글 : 김세영 기자)